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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매표화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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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뉴스] 최윤석매표화학 대표

2012.08.29.

 

청와대부터 살림집까지전 국민이 쓰는 매표 인주

문화 자체가 점점 디지털화되면서 오히려 아날로그의 감성이 더욱 주목을 받는 시절이다. 그런 감성을 자극하는 물건 하나를 발견했을 때,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치면서 알지 못할 공감이 생기기도 한다.

매표화학의 인주는 그런 이미지다. ‘하늘을 날며, 꿩을 잡는 매란 뜻의 한자에 그 주위를 월계수 잎으로 둘러싼 매표화학의 CI는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이미지다. 그것은 매표화학이 생산한 매표 인주가 어느덧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국새를 찍는 청와대부터 사무실과 관공서 등 널리 쓰이고 있는 매표인주의 역사는 6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최상봉 회장은 1946년 삼성화학공업사를 창업했다. 세 사람의 동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3자 합자회사란 뜻으로 삼성(三成)’이란 이름을 달았다. 중국이 인주의 선진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국내에서는 일본과 중국 제품의 수입에만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최 회장은 한국에서 인주 사업을 일으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다른 나라에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고, 독자적인 힘으로 인주를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밤을 지새우며 연구에 매달린 지 2년째. 거듭된 실패에 동업자 2명은 결국 그의 곁을 떠났지만, 최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홀로 남아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던 최 회장은 마침내 독자 기술로 인주를 개발, 전국에 납품했다.

매표는 인주품질의 핵심인 전사성, 내사성, 내약품성이 뛰어난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한국 최초로 문인들의 낙관용 인주를 개발하고, 특수공법과 특수기술을 활용한 서화용 명가 인주를 생산해 업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손으로 반죽해 인주를 만드는 과정이다. 물론 현재 일부 공정은 자동화되었지만 아직도 전체 공정의 절반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숙련된 장인의 손끝을 거쳐야만 진가를 발휘하는 명품인주가 나오기 때문이다.

2007년 아들 최윤석 대표가 가업을 이어 받았다. 2세 경영을 시작한 매표화학은 국내 인주 제 1기업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문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컴퓨터의 보급과 전자 결재의 일반화는 인주 수요의 급감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인주는 한 번 사면 몇 년간 사용하기 때문에 순환이 빠르지 않다는 약점도 있다.

최근 매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용 인주와 스탬프 생산을 뛰어넘어 제품 고급화에 승부를 걸고 있다. 지난해부터 동양화, 서예 등에 쓰이는 고급 낙관용 인주를 개발하는 데 공을 들여 올 들어 생산에 성공했다. 까다로운 일본의 서화예술가들에게도 품질을 인정받아 수출 주문이 들어온다.

최 대표는 서예나 그림을 하는 분들은 마지막에 낙관을 찍는데, 우리나라 문인들이 낙관용 인주를 중국제나 일제를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국내 인주가 번져 작품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만들어보자 마음먹고 8개월간 연구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개발된 인주는 3년 된 쑥을 넣어 만들었다. 고급 재료와 특별한 기술로 무장한 서화용 인주는 예술가들에게 서서히 인정받았다. 이제 국내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마무리할 때, 매표화학의 낙관용 인주를 찍게 됐다.

수익 창출의 방편으로 사업도 다각화했다. 요즘 구상하고 있는 것은 명품 문구 브랜드 매장이다. 인주 외에도 매표 신형 스탬프 패드는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고, 키보드 청소기, 18m 수정테이프, 고급 해면기, 삼각 핀통, 칼라호각, 고급 클립핀통 등 문구류의 IT 아이템들을 생산하고 있다.

최 대표는 사실상 인주가 하향 산업이 되었지만 인주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떤 시련에도 인주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어 한결같은 기업의 이미지는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형성해 기업 이미지 구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원문보기 : http://news.kbiz.or.kr/news/articleView.html?idxno=29808